고등시절 국어학습

고등시절 도와줄 수 있는 것

 고등학생들은 그네가 왜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해야 하며, 플래시 메모리 반도체의 공정을 알아야 되고, 성리학의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을 논해야 하며, 조선시대 제곱근의 개념을 현대 수학과 왜 비교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문들이 과학, 기술, 철학, 수학 등의 지식을 시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전문지식으로 풀면 더 오래 걸리고 혼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과성향) 지문에 나온 설명 정도로 이해될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수능형 사고란 각 지식이 아니라 논리적 사고 즉 국어 논리를 묻는 것입니다.
대학에서 수학 (修學)할 능력이 있는지를 따질 때 국어 논리력은 무척 중요한 능력입니다. 수많은 논문과 가설들이 모두 다 일목요연하게 서술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내용들을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서술하기는 그리 녹녹치 않습니다. 전공서나 논문들을 처음 보더라도 이해할 수준이 되어야 대학에서의 수학 (修學)이 수월합니다.

 그런데 학생들은 문제집을 몇 권 풀었는가를 훈장처럼 뿌듯해할 뿐만 아니라, 틀린 다음 재학습 때 답이나 지문이 이해되면 넘어가 버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해했다고 좋아하던 그 지문이나 문제는 두 번 다시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 시험엔 또 다시 새로운 내용들입니다. 결국 도출과정이나 방법은 익히지 않고 단편적인 정답 이해나 작품 섭렵에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붓습니다 . 그런데 정작 자신은 그리 공부하는지 모릅니다. 모국어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이라는 게 , 자신에게는 당위성 높은 생각이기에, 답이 맞거나 또는 이해되면 자신이 도출과정과 방법도 아는 것이라 착각합니다.

 그러니 답이 맞은 문제는 과정조차 맞았다고 넘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국어는 선택지가 수학과 달라서 확신 없이 어설프게 ‘이게 맞는 거 같긴 한데......’ 해서 맞은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래서 틀린 것만 다시 보는 국어공부는 자신만의 생각이 바뀌지 않습니다. 많은 주관적 풀이를 발견조차 못하는 것이지요.
사람의 생각이란 것이, 변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어른들 세계에서 많이 보시잖습니까. 틀린 것 몇 개 본다고 절대 사람의 생각이 바뀌지 않습니다.

 심지어 일부 학부모님조차도 ‘도출과정이나 방법 ’을 체득시키면 ‘작품섭렵이나 문제풀이’보다 정통적이지 않게 보는 분도 있습니다. 진짜 정통이 뭔지 모르시는 것이지요. 현행 시험제도 아래에서 점수  1~2 점도 아닌 국어등급 자체를 올리는 스킬이나 기술은 단언컨대 없습니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다만 그 선생님께서 정통의 눈높이를 얼마나 낮추려 애쓰셨느냐의 산물일 뿐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 기출문제 모두 다 풀었어요. 고전소설 마스터 했어요. 현대시 한 바퀴 돌았어요..... 차라리 동네 한 바퀴 돌았으면 운동이라도 되지요 ^^. 이 학생은 종국에 ‘나는 국어와 안 맞아 ’, ‘국어는 오르기 힘들어 ’ 심지어 부모님들도  ‘국어도 타고 나는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고 1,2 때는, 엄청난 성실함으로 또는 우수한 유전자로 성적을 내는 경우도 있지만 현재의 고 3  난도를 성실함이나 또는 타고난 유전자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근래의 수능이나  고 3  모의고사를 풀어보시기 바랍니다. 턱없습니다. 사고가, 즉 사람이 바뀌어야 합니다.
 
 이는 꼭 학원을 다녀야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가' 학생이 '나' 학생보다 모의고사 100 개, 현대시 100 선, 고전소설 100 선 더 알면 국어성적이 더 잘 나올까요? 설사 이렇게 해서 등급이 올랐다면, 그건 뭘 얼마나 했냐고 물어볼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했냐를 물어야 합니다 .

 그리고 여기까지 확실하게 인지하신 학부모님조차도 , 고 1 보다 고 2 가 , 고 2 보다는 고 3 이 수능형 사고 레벨이 더 높을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 국어는 언어입니다 . 내신 편의상 학년을 나누는 것이지 작품 더 많이 알고 문제 더 많이 풀었다고 수능형사고 레벨까지 더 높은 것은 아닙니다 . 영어가 고 3 이라고 고 2 보다 잘 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과 유사합니다 . 결국 수능형 사고를 체득하고 학년을 올라갈 때 , 내신과 모의고사 모두 유의미한 결과가 나옵니다 .

 그럼 수능형 사고는 어찌 공부할 때 레벨업이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초등이 아닌 고교생은 이미 사고가 상당부분 굳어졌기 때문에 그냥 열심히 공부한다고 사고가 바뀌지 않습니다 . 오히려 안 좋은 자기만의 주관이 더 굳어지는 역효과를 내기도 하지요 . 생각해 보십시오 . 자기만의 시각으로 지문 읽고 , 문제 풀고 , 채점 후 틀린 것 해설보고 아 ~~이제 알겠네 .^^자기만의 해석시간이 압도적입니다 . 그 지문 그 문제만 이해 한 것입니다 . 내신조차 수능형이 많아 살짝 바꿔 놓으면 전혀 다른 게 답이 될 수 있습니다 .(혹여 다음에라도  EBS  연계라는 말이 수능에서 얼마나 허황된 말인지 알려드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아무튼 비문학 독해력 , 문학 해석력 자체를 익힌 다음 , 그 사고 적용에 상당 시간을 지속적으로 노출시켜야 겨우 시작입니다 . 대신 , 한 번만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 온다면 그 다음부턴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조금 더 사고의 문을 열고 , 그러다 이해되면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고 , 또 도전할 만한 것이 되지요 . 이른바 선순환의 고리로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

 예를 들어 구체적인 방법을 하나 말씀드리자면 저는 일주일에 기출문제  7 회를 푸는 것보다  1 회를 발표 준비하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 설명을 할 줄 모르고 답만 이해하는 공부를 할 바엔 , 다른 과목은 모르겠으나 , 국어에서는 차라리 재우는 게 훨씬 유익합니다 . 부모와 사이좋고 건강이라도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 지문 하나와 그 딸린 문제들을  1 시간이상 스스로 고민해보는 경험은 고교학습 초기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합니다 .

 나중에 고 3 들은 마음이 벌써 조급하여 이런 말이 귀에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 고 3 들에게 자주 말합니다 . 뭣이 중허냐 ? 뭔가 쉬지 않고 푼다는 마음의 평화 ? 문제집 몇 권을 풀어 제낀 자신에 대한 기특함 ? 운 좋게 아는 작품이나 지식이 나와서 역시 공부한 보람이 있다는 뿌듯함 ?   수 능은커녕 범위가 정해진 내신조차도 이러한 마인드로는 고 3 때 한 달 내내 국어만 해도  3 등급이 맥시멈입니다 .

 실은 이 질문은 몇몇 학부모님들께도 드렸던 질문입니다 . 가끔 시작반 고 3 에게 고 1  기출문제를 숙제 내주면 바쁜 고 3 에게 뭣 하는 짓이냐는 표정을 가끔 봅니다 .^^ 그건 처음 보는 지문과 난도 높은 문제를 스스로 설명할 줄 아는 학생이 짓는 표정이지 , 맞은 문제도 오답 4 개를 설명도 못하는 학생이 지어야 할 표정은 아닙니다 . 사고의 전환은 어려운 지문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 경험 많은 어른이  2~3 번을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르는 고난도 지문은 , 머릿속이 하얘져서 사고의 전환을 논하기 어려운 상대입니다 . ​

 쉬운 지문과 문제로 제대로 된 사고과정을 경험해야 , 고난도도 그 과정이 뿜어져 나오는 겁니다 . 독학을 하든 어느 학원을 다니든 꼭 설명하게 하시고 , 틀린 것만 질문하는 게 아니고 맞았더라도 설명 안 되는 것은 선생님께 질문하게 하십시오 . 대부분의 선생님들께서는 그 아이를 눈여겨 볼 것입니다 . 국어는 ...... 맞았지만 설명 못하는 게 생각보다 많습니다 .

 이때 초 , 중 시절 잘 체득된 사고력과 독해력은 지문과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줍니다 . 사고의 다양성이 체득된 아이는 설사 처음엔 국어성적이 높지 않더라도 조금만 올바른 방법을 알려주면 정말 무섭게 수능형사고 레벨이 오릅니다 . 그 반대의 경우는 앞에서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으니 넘어 가겠습니다 .

 아이들이 국어 정답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 하고 , 또는 선택지 중 두 개가 헷갈린다고 많이 말합니다 . 이것은 처음에 게임의 룰조차 모르고 시작하는 학생입니다 . 수학이나 과학은 답이 하나이고 그 외 나머지 선택지는 절대 답이 될 수 없습니다 . 그러나 국어라는 게임은 원래 답이 여러 개 일 수 있습니다 . 다만 그중 가장 답인 것을 고르는 게임이지요 . 즉 정답지 하나를 지우더라도 다른 답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 빨파노검흰을 구분하는 게임이 아니라 , 빨강 , 자주 , 분홍 , 주황을 구분하는 게임입니다 . 처음엔 유사해 보이지만 점점 그 차이가 커 보이면 금방 구분합니다 . 그 차이를 점점 크게 느끼게 하는 게 바로 열린 사고 , 수능형 사고입니다 . 
 
 벌써 밤이 많이 깊었네요 . 배가 몹시 고프니 퇴근해야 할 것 같습니다 . 내신 휴강기간 끝 무렵이라 오랜만에 수업준비나 시간에 대한 압박 없이 편하게 얘기했습니다 . 오늘 못 다한 얘기는 혹여 다음에 기회가 닿는다면 하도록 하겠습니다 .

 진심으로 덧붙이자면 , 제가 위에 말씀드린 내용들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시는 선생님들이 학부모님들 주변에는 많이 계십니다 . 다만 그 선생님들의 주옥같은 말씀들을 학습진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넘긴 건 아닌지 , 또 모국어 화자라는 함정에 빠져 단순히 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 듣고 싶은 것만 들은 건 아닌지 , 아이들에게 당부하면 어떨까 합니다 .  생각하는 삶은 고금의 진리입니다 .

 여기에 오신 모든 이들의 평화를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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